벼랑끝으로 뛰어들었던 기분이었다.
아무것도 의지할것없는 상태로 나의 몸을 낭떠러지 아래로 내던지는 기분이었다.
그런 심정이었다.
2003년으로 기억한다.
7년전 난 새로운 어떤것을 만나게됬다.
스노보드
그 당시 난 군대를 다녀 온 복학생이었고 정신 차리고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.
내 삶의 또 다른 시작을 찾기 위한 시기
그 때 만나게 된 스노보드는 뭔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느낌을 나에게 가져다 주었다.
2003년 겨울 스노보드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타 보려고 마음을 먹었고
헝그리보더 중고장터에서 0203 버튼 미션 바인딩을 구입하게 된다.
그것이 내 스노보드 입문의 시작이었다.
그리고 참 지금와서 생각하면 골때리는 일이 터졌다.
헝그리보더라는 사이트 벙개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트러블 그리고 싸움
온라인상에서 많은 비난 ,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그렇게 난 헝그리보더라는 사이트에 서서히 무엇인가를 느끼기 시작했다.
헝그리보더라는 사이트를 알기 전
스키장에서 어떤 사람을 우연히 만난적이 있었다.
헝그리보더를 만드신 이정윤 형님 그분의 미소가 좋았고 정윤형은 날 잘 기억 못하시겠지만 난 참 좋은 형으로 기억하고 있었다.
그 좋은 기억속에 남아있는 정윤형이 돌아가셨다는것은 나중에 헝그리보더 라는 사이트를 좀 더 알게 됬을때 알게되었고
이런 생각이 들게 되었다.
'그 좋은 형이 만드신 사이트에 내가 참 피해를 준것같다' 라는 생각
그 후로 난 헝그리보더 사이트에 그나마 도움이 되는 일은 열심히 활동을 하는것이라 생각했다.
나름 이런저런 작은 일들을 열심히 했고 처음 헝그리보더의 운영자 형들과 서포터 형들을 만나게 됬던 일은
헝그리보더 후드티 / 보호대 공동 구매 포장을 하는 자리였다.
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 사람들 가운데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며 헝그리보더 사람들과 가까워져갔다.
그후 이런저런 헝그리보더 일들을 자진해서 돕기 시작했고 난 자연스럽게 헝그리보더 서포터가 되었다.
게시판 관리자이며 행사가 있을때는 도움을 주는 서포터
그냥 뿌듯했다.
당시 학생이었기에 시간이 많았던 나는 정말 열심히 했던것같다.
04/05 시즌이었던걸로 기억한다.
헝그리보더에서는 바이어스 가이드를 만들고 있었고 그 바이어스 가이드와 함께 헝그리보더 Magazine 이 만들어질 예정이었다.
바이어스 가이드는 여러 형들께서 이미 만들고 계셨고
난 바이어스 가이드 출간 후 만들어질 헝그리보더 Magazine 의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.
혼자 매거진을 만드는 작업은 참 힘이 들기도 했다.
디자인 업체가 두번이 바뀌었고 그 당시 헝그리보더 사무실이었던 잠원까지 왔다갔다 하는 시간도
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참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.
하지만
힘들다는 생각없이 정말 열심히 했었다.
03/04 , 04/05 , 05/06 , 06/07
4년
해가 지나며 난 점점 졸업을 해야하는 시간이 다가왔고 점점 내가 헝그리보더에서 하는 일들은 많아졌다.
사람들과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.
'너 어떻게 할라고 해?'
당시 난 교육대학원생이었고 정말로 뭔가 선택을 해야할 시기였다.
그때 난 헝그리보더의 일들을 정리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.
'좋아하는것은 취미로 남겨두자' 라는 생각과 함께
대립하고 있었던 생각이 있었으니...
'헝그리보더 일을 하면서 꾸게 된 꿈을 이루고 싶다' 는 생각이었다.
꿈
03/04 시즌 겨울때부터 나의 시즌이 시작되고 끝이 되는 날
난 휘닉스 파크 정상에 캔 커피 한개를 사들고 올라갔었다.
정윤형이 계시는 몽블랑 정상 뒤쪽으로...
그리고 항상 이렇게 이야기했다.
'형님 열심히 할께요'
06/07 시즌
난 결국 결정을 했다.
헝그리보더에 인생을 걸어보기로
그것이 헝그리보더에서의 또 다른 나의 시작이었다.
06/07 , 07/08 , 08/09 , 09/10
잠원 , 신촌 , 연희동으로 이사했던 헝그리보더 사무실에서 일을 했고 버텼다.
친구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했다.
걱정어린 '너 잘 하고 있는거니?' 라는 말과 함께 '난 너가 부럽다' 라는 말
하지만 난
친구들이 부러웠다.
어른들이 바르게 사는 삶이라는 월급 제대로 주는 직장에 취직해 결혼을 하고 살아가는 모습
그 평범한 모습이 난 부러웠다.
부모님께서 날 믿어주셨고 크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안 하셨기에 난 버틸 수 있었다.
그 믿음을 저버리고 싶지 않아 나름 열심히 했다.
하지만
09/10 시즌의 마지막 행사인 파티까지 마무리 하고 난 헝그리보더를 떠났다.
헝그리보더를 떠나게 된 이야기들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기에 말은 할 수 없지만
내가 스스로 걸어서 헝그리보더를 떠났다.
현실적인 어려움?
주변의 이야기들?
그런건 문제가 아니었다.
그건것들이 문제가 됬던것이라면 이미 버티지 못하고 몇년전에 난 다른 길을 선택했을것이다.
그건 '나의 꿈' 에 대한 문제였다.
헝그리보더를 떠나게 된건 어느 정도 나의 결정이었지만 정말 힘들었다.
약 7년간의 시간
나의 20대반을 있었던 그곳
내 삶이자 생활의 큰 부분이었던 그곳
거의 두달이라는 시간을 정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.
하지만 그런 나에게 참 많은 또 다른 오해들이 다가왔다.
공허감에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생각들로 가득차있던 나에게
찾아온것은 배신감, 독기, 서운함, 불신이었다.
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눈덩이처럼 커졌고 난 그 커다란 눈덩이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만 했다.
헝그리보더에서 일을 할 때 이미 많은 화살들을 받아내고 버티는데에 익숙했던 나였지만
그런 화살들은 매번 아픔을 주었기에...
후회는 하지 않았고 하지 않는다.
난 헝그리보더와 나의 꿈을 위해 내 인생을 걸었었고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자신한다.
다시 한번 비슷한 상황이온다면난 똑같은 선택을 할것이라 생각한다.
정 내키지 않았었던 일이었지만 그 선택이 헝그리보더를 위했던것이었고 내 꿈을 위했던 것이었기에...
내가 모든것을 잘했다고 이야기는 할 수 없다.
나도 사람이기에 실수도 있었고 부족한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.
하지만 그 모든것들을 역지사지라는 네글자의 단어와 함께 생각해본다면 좀 더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.
난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이다.
실수들과 부족했던점을 아직까지도 모를지도 모른다.
하지만 노력은 하고 이해하려한다.
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입장들을...
그것을 배웠고 실천하고 노력한다.
난 요즘
또 다른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.
꿈을 위해 다시 한번 도전하려는 시작
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고 한다.
그 돌을 맞고 머리가 깨지고 팔,다리가 부러져도 다시 일어서려는 개구리라면 그만 돌을 던지고
가만히 지켜보는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옮은 방법이 아닐까?
당신은 당신이 가볍게 여기고 당신만의 생각에서 이야기한것에
인생을 걸어본적이 있는가?
난 그것에 인생을 걸었었고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서보려 한다.